어저께는 모처럼 중학 2년에 올라가는 딸 한나와 함께 영화를 관람하였다. 딸아이와 함께 영화 관람하는 것이 처음인지라 딸아이도 매우 흥분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햄버거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영화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968년 북한 124부대는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침투하였으나 [김신조]를 제외한 전 대원들이 사살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우리 정부에서도 중앙정보부가 중심이 되어 공군 휘하에 김일성 주석을 암살할 목적으로 684부대가 "실미도"에 창설되었다. 부대원들은 훈련을 담당할 기관병들과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는 죄수들을 설득하여 징집된 특수부대원들로 구성이 되었다.
외딴섬 [실미도]에서의 훈련은 말 그대로 지옥훈련의 연속이었다. 훈련 중 사망자도 있었다. 인간한계를 넘나드는 각종 훈련이 지속되면서 무질서하고 거칠기만 했던 죄수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할 대원으로 변해갔다. 잔혹한 훈련이 끝나고 마침내 임무를 수행할 출정식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변에서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대원들의 눈빛은 마치 평양으로 들어가 반드시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겠다는 각오와 일념을 보여주는 듯 했다.
드디어 보트에 몸을 실은 대원들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를 진행해 갔을까? 갑자기 강한 불빛이 대원들을 향해 비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일시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다행히 그것은 부대 본부에서 나온 배였다. 그런데 전달된 메시지는 작전이 취소가 되었으니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계속 진행하겠다는 대원들과 상부의 지시를 따르라는 지휘관들과의 실랑이가 오고간 후 부대로 복귀하였다.
그 후 작전지시가 계속 지연되기를 3년, 대원들은 지루해 하기 시작하였고, 부대장도 상부에 거듭 방문하면서 임무지시를 내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작전은 고사하고 부대를 해체하라는 명령이 상부로부터 전달되었다. 그 이유인즉 남북한의 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돌아섰고, 또한 부대를 창설한 중앙정보부장이 교체되었기 때문이었다. 정치적 이유로 부대를 해체해야만 하는 것에 부대장은 강한 불만을 품고 상부에 항의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게다가 정부는 이 부대가 국내외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면서 부대해체 뿐만 아니라 기관병을 제외한 전 특수부대원들을 사살하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부대장은 망연자실하여 부대로 돌아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관병을 살리고 특수부대원들만을 사살할 것인가? 아니면 부대장 자신을 포함하여 전 기관병과 특수부대원들이 함께 사살 될 것인가? 잔인하게도 상부에서는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시간적 여유는 없다. 고작 5일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부대장은 2명의 훈련지휘관과 회의를 하였다. 결과는 의견이 두 가지로 엇갈렸다. 평소에 대원들에게 잔인하게 훈련시켰던 조 중사는 대원들만을 결코 죽게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대원들에게 인간적 연민으로 다가갔던 박 중사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기관병을 살리고 대원들을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달라지고 보니 두 중사의 태도가 서로 바뀌었다.
이 장면에서 잠시 나 자신도 고민을 해 보았다. 만일 내가 영화 속의 실제 인물이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였을 것인가? 조 중사의 선택일까? 아니면 박 중사의 선택일까? 아마도 주님이었다면 부대원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였을지도 ......
참으로 부대장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어려운 문제 앞에 고통스러워하였다. 하지만 부대장도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장고 끝에 대원들을 사살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반대하는 조 중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래서 박 중사는 부대장에게 상부에 다시 한 번 지시를 철회할 것을 설득하도록 조 중사를 출장 보내자는 의견을 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 중사는 대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과 비장한 각오로 실미도를 떠나 상부로 출장을 떠난다.
하지만 부대해체는 물론 자신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음을 알고 있는 대원들은 작전에 들어간다. 자신들을 1:1로 맡고 있는 기관병들을 각자가 사살하고 섬을 탈출하는 것이다. 마침내 작전수행에 들어갔고, 한 동안 교전이 벌어지고 특수부대원들의 승리로 일단락 된다. 섬을 탈출한 대원들은 민간 버스를 탈취하여 승객들을 인질로 삼고 청와대가 있는 서울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경계망이 형성되고 교전이 벌어진다. 경계망을 뚫고 버스는 계속 달린다. 그리고 달리는 버스 안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무장공비의 침투 소식이 뉴스로 보도된다. 대원들은 자신들이 무장공비로 둔갑되어 보도되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이에 대원들은 자신들의 진상을 반드시 세상에 알리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하지만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뚫기는 역부족인지라, 마침내 대치상황에서 인질들을 풀어주고 자신들의 몸에 피를 흘려 부모님이 지어주신 각자의 이름을 버스 바닥과 유리창에 적는다. 결코 자신들은 무장공비가 아니라 정부의 명령을 받고 특수임무(북파공작원)를 맡은 대한민국 군인이었음을 아로새기면서......
그리고는 수류탄을 빼어들고 버스와 함께 전 부대원들은 자폭을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관람 내내 한나는 눈물을 흘렸다. 특히 조 중사가 마지막으로 상부를 설득하기 위하여 떠날 때 대원들은 다시는 못 만날 것을 알면서도 올 때 간식 좀 사오라고 주문하였는데, 조 중사가 대원들이 자폭하는 현장에서 과자 봉지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면서 많이 훌쩍 거렸다.
나 역시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분단된 민족의 비극과 비참함, 왜곡되고 굴절된 정치사의 한 가운데서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당해야 했던 주인공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답답해 왔다. 한편으로는 군 복무시절 최전방 철책에 근무하면서 "이웅평 소령" , "신중철 대위", "중국민항기 불시착" 등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그때마다 비상경계근무태세로 긴장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북방 한계선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심리전 방송을 들으면서 가졌던 분단의 아픔과 안타까움이 다시 몰려왔다. 또한 군에서 겪어야 했던 말할 수 없는 여러 아픔과 슬픔들이 밀려오면서...
역사가 E.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사회와 과거 사회와의 대화"라는 것이다. 역사란 결국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해석은 상대적일 뿐 보편적 역사 해석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가치와 관점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 해석도 달리 할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이런 역사해석 관점에 비추어 오늘 우리 현실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과거에 치우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의 입장만을 이야기 할수도 없고, 균형잡힌 해석은 무엇일까?
오늘 우리 정치 현실은 통일은 멀고, 인권의 회복은 거북이 걸음이고,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만 빠져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이전 보다 좋아지기는 했지만 권력자들의 정직성은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한데......국민들은 제 살길에 바쁘고, 이 민족의 역사는 또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답답했다.
주변의 경쟁국인 중국은 유인우주선을 발사했고, 일본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사대국화를 향해 가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의 고통스런 역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이 이제는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뒷전에 밀려 멀찍이 물러나 있은지 오래다. 누가 이 민족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인가? 목회자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 가운데서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고민 고민 또 고민해 보지만 현실적 요구 앞에 이 고민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다.
교회는 많은데, 인권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도덕성도 마찬가지다.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교회지도자들(장로, 권사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데 정직성이 말이 아니다. 신앙과 현실이 너무도 거리가 멀다. 교회지도자들의 부패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소식이 일간지에도 간혹 실린다. 참으로 목회자의 역할과 교회부흥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재 정의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목회 지도력의 참된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와 다른 외국의 현실에서 고민한 신학적 주제를 아무 여과 없이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오늘도 끝없는 고민에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살펴보면서 주님을 향해 시선을 옮겨본다.
역사의식을 잃지 않는 목사가 되기를 갈망하면서......
왜냐하면 나 자신이 역사의 현장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인간임을 알기에......
주여!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다시는 피 흘림이 없는 통일 민족이 되게 하소서!
다시는 역사 속에 강대국의 이용물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 땅에 사는 목회자로서 복음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는 지혜를 주옵소서!
이 땅에서의 교회의 사명과 정체성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바로 알게 하옵소서!


















